불로그북

비목의 산하여~

뱜바우 2023. 4. 11. 14:43

옛추억을 소환해 봅니다.

'이제 유월 하순이다.

화해무드를 탔던 남북관계는 북의 오물풍선을 남으로 날려보내는 등 날로 경색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아련했던 군시절의 추억이 새롭다.

 

삼십여 년 전 썼던 내 글을 검색해 보니 기간이 지나서 그런 지 이상하게 표시돼 있다.

다시금 아련해지는 군시절의 추억을  돌이켜 본다.

 

"신문에 보니 강원도 비목공원이 소개되어 있다.

육십 년도 백암산에서 근무하던 초급장교(한 명희)가 지었다는 비목의 시가

다시금 새롭게 가슴에 와닿는다.

여기에 장 일남 씨가 곡을 붙인 게 비목이라는 가곡이다.

 

 

육이오 동족상잔의 전장이었던 이 산하가 내가 군인이라는 이름으로 청춘을 살랐던 곳이라 더욱더 가슴에 와닿는 건 지도 모르겠다.

유난히도 가파르던 그 골 그 능선들, 그 처절했던 군시절의 기억이 몇 년 전 까지도 이따금 꿈속에서 나타났던 내 생의 편린

들이다.

그중에서도 그때 야간철책근무를 위한 점호에서 어김없이 부르던 노래가 아직도 귓전에 맴돈다.

소대장은 인원파악을 마치고 격려와 주의사항이 끝나면 군가를 한곡 주문한다.

군가준비! 군가는전선의 초병들! 하나둘세넷 둘세넷

1. 백암산 먹구름이 초생달 가리울 때

말없이 서있는 여기 초병들

말해다오 북녘 땅아 너는 알리라

북을 보고 울부짖는 전선의 초병들

2. 북한강 거센 바람 강물도 슬피 울 때

말없이 서있는 여기 초병들

말해다오 철조망아 너는 알리라.

별을 보고 울부짖는 전선의 초병들

3. 고향땅 어머님의 얼굴이 그리울 때

말없이 서있는 여기 초병들

어머님 얼굴을 저 달에 담아

달을 보고 울부짖는 전선의 초병들.

 

 

 

다소 느린 곡인 이 노래는 분명, 군가는 아니다.

그러나 거기 그 부대에선 군가보다도 더 많이 불려지던 노래이기도 하다.

 

 

이 노래가 유래된 것에 내가 관계하고 있으므로

더 절절했는 지도 모르겠다.

나는 증평에서 육 주 훈련을 받고 다시 칠성부대 사단훈련소에서 사 주 훈련을 마치고 전입 온 부대가 선봉연대 3중대 화기소대였다.

칠십 년대 화기소대 주화기는 M60기관총, 60미리 박격포, 57미리 무반동총이었다.

보병중대에서 그래도 제일 깡이 센 곳이 화기소대 ~~~

덩치의 크고 작음에 관계없이 그 들이 다루는 화기의 대소에 따라 그 구성원들의 세기가 달라지는 게 군대이다.

여기서 보병화기 중에 가장 무겁다는 무반동총을 메고 훈련에 훈련을 거듭하다 보니 자연 악이 생기고 깡이 생기게 마련이다.

 소총수들이야 훈련을 할 땐 배낭에 소총하나 달랑 들고나가면 되지만

이십 킬로가 넘는 무반동총에 덤으로 메고 나서야 하니

아니 그럴 수가 없다.

 

이때 가끔가다 하는 군대회식이 있었다.

회식이래야 담 넘어 민간인가게에서 막걸리 한 통, 라면땅 한 박스가 전부지만 오래간만에 마셔보는 알코올에 한바탕 내무반이 술렁였다.

여기서 가끔 부르던 노래가 '전선의 초병들'이다.

이렇게 악으로 버티던 중대에서 반년 동안 지내고 나는 전출명령을 받고 바로 옆 중대로 전출을 가게 됐다.

그때 몸과 함께 머릿속에 담아 간 노래가 이 노래이기도 하다.

전입신고 시 부른 노래가 이 노래고~~~~~~~

다 들 처음 들어보는 노래가 신기한 듯 반응이 사뭇 좋았다.

"K일병 이 거 누가 지은 노랜가, 곡은 누가 붙였고???

k일병이 자작한 거 맞지?????"

나는 ‘아니다’라고 잘라 말하지 못했다.

모두들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미더움에 찬물을 끼 얻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고참들이 기타를 들고 와 음을 맞춰보고 관심이 사뭇 많았다.

 

여기서 부대원들과 적응을 해가고 있을 즈음 이상한 소문이 들리기 시작했다.

우리 연대가 전방투입이 임박했다는 소문이다.

모두 겁에 질려 뒤숭숭할 때 이 노래는 우리들의 마음을 읽어주는 하나의 매개가 되어 가슴속을 파고들었다.

그리고 우려는 현실이 되어 백암산 그 기슭에 배치되어 눈앞에 적들과 마주하게 되었다.

앞에 남방한계선 철책이 있고, 건너편에 북방한계선이 그리고 우리가 말하는 DMZ이 가운데 있는 곳이다.

서로 철책과 철책을 마주하고 서 있는 것이다.

보통얘기 소리는 안 들리지만 고함을 지르면 육성으로도 들리는 곳이다.

건너편에서 "야! 이밥에 고깃국 줄께 넘어와라!!!!"

그러면 이 쪽에서는 "야! 우리는 날마다 먹는다 니들이나 실컷 먹어라!"

 

 

처음 철책에 투입될 때 그 긴장감이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였다.

칠흑 같이 어두운 밤, 시계 제로인 북을 응시하고 있는 우리는 조그만 소리에도 머리털이 거꾸로 솟고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이다.

'낮에는 아무렇지도 않던 나무그루터기가 밤만 되면 시커먼 괴물이 되어 왜 자꾸 앞으로 다가오는 건 지????'미치고 팔짝 뛸 거 같았다.

그 긴~긴~ 밤을 북을 응시하며 지새던 그때 우리는 그 노래를 입속으로 부르면서 여기 내가 서있는 의미가 무엇인가?

아니면 까마득히 먼 고향에서 자식의 안부를 그리워할 어머님의 얼굴을 그리며 하루하루를 죽이고 있었다.

그 길고 길던 시간들~~~~~~~

우리 젊은이들은 생애에 하나의 획을 긋고 있었는 지도 모른다.

거창하게 삶이란?

아니면 부모님?

그리고 머지않을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

그렇게 아무 의미 없는 시간들인 줄 알았는 데

지내고 나니 그 시간들이 나름대로 소중한 시간들이었던 것 같다.

 

 

지금 그 능선, 그 기슭에서 북을 응시하며 서있는 초병들도 이 노래를

부르고 있는지~~~~~~~~

언제 시간과 여건이 허락된다면 거기 내가 서있던 곳에 다시 서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