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이면 문뜩 떠오르는 선생님과의 추억, 기억 속 선생님의 이야기 들려주세요
지금부터 한 사십여년 전의 이야기입니다.
충청도의 자그마한 시골 초등학교에 초가을이 찾아 왔습니다.

학교 옆으로는 시냇물이 흐르고 차가 지날 때마다 흙먼지가 뭉게구름 처럼 피어오르는 신작로가 길게 누어있는, 그리고 학교 뒤로는 소백산맥의 줄기가 완만한 능선을 그리며 이어지는 곳입니다.
눈을 돌리면 바로 산이 다가서는 곳입니다.
사람들은 골짜기 골짜기마다 옹기종기 마을을 이루고 서로 의지하며 얼마 안되는 논밭을 일구며 사는 한적한 시골입니다.
그 곳에 사는 아이들이 이 학교에 다닙니다.
책을 책보에싸서 남자애는 어깨에 대각선으로 메고,여자애들은 허리에다 둘러 매고 학교에 오고 갑니다.
이렇게 책보를 어깨나 허리에 매면 달리기도 쉽고 장난치기도 쉽습니다.
집에 가는 아이들이 달릴 때마다 책보속의 양은 도시락에 반찬통과 젓가락이 짤그락 짤그락 장단을 맞춥니다.
토요일 점심때가 한 두어 시간 지난 오후입니다.
다른 학년은 오전수업을 마치고 모두 집으로 갔고 육 학년만 남아서 다가올 중학교 입학시험을 준비하느라 교실을 지키고 있습니다.
학교가 텅 비어 있는 듯, 산속의 절간처럼 조용하기만 합니다.
학생들은 교실에 있는 데 선생님이 안계십니다.
아마 볼 일이 있으셔서 잠깐 자리를 비우신 거 같습니다.
창밖의 햇살은 따뜻한 기운을 내뿜으며 아이들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얼마쯤 지났을까?
아이들이 서로 눈을 맞추며 무언가 신호를 보냅니다.
그러더니 하나 둘 밖으로 사라지는 것입니다.
키가 180이 넘고 얼굴은 가무잡잡하니 눈꼬리가 위로치켜 올라간 담임선생님이 언제 들어오실 지 모르는 데도 누가 잡아 끌기라도 하는 지 커다란 푸라타나스 그늘 아래로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합니다.
저만치 학교옆을 흐르는 개울에 놓여진 다리며 신작로가 보이는 곳으로 만약에 선생님이 나타나시면 후다닥 교실로 뛰어들어갈 수 있는 곳입니다.
아이들은 운동장 바닥에다 금을 그어 놓고 놀이에 정신이 없읍니다.
얼마쯤 지났을까?
한 아이가 다리 쪽을 가르킵니다.
움직이는 것이 있습니다.
짐승도 아닌 거 같고 이상한 물체가 꾸물꾸물 학교쪽으로 계속 다가오고 있습니다.
움직이는 것은 사람이었습니다.
아이들이 하나 둘 그 쪽으로 다가갑니다.
할머니 였습니다.
할머니는 몸이 정상이 아닌 거 같습니다.
다리를 못쓰시는 지 걷지를 못하고 두손과 무릅을 바닥에 끌다시피하면서 앞으로 오고계십니다.
옷도 남루하기 이를 데가 없읍니다.
한 아이가 가까이 다가가 말을 건넵니다.
“할머니 어디 가셔유?????”
“응 저 산넘어 동네에~~~~
딸네 집에 다니러 왔다가 집이 궁금하여 집에 가는 중이여”
“집이 어디신대유??”
“응 저 산넘어 동네 등골이여“
“네!!!”
“아니 거기가 어딘데 이렇게 가시는 거유?”
“아 뮈 가다보면 다 가것지....”
학교 뒷쪽으로 올려다 보면 가물가물 능선이 보이고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는 곳,
그 너머가 등골이라는 걸 아이들은 어른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알고 있습니다.
이 곳도 산골이지만 거기는 도로에서 멀리 떨어진 두메산골입니다.
하지만 그 곳을 가 본 사람은 없읍니다.
작은 오솔길이 구불구불 산중턱으로 이어져 마치 뱀이 길게 누어있는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할머니 처럼 가시다가는 해가 질 때까지 고개를 넘어 집에 가시기란 턱도 없는 시간입니다.
시간이 있다고 해도 할머니의 그 몸으로는 힘이 붙여 갈 수도 없읍니다.
한 아이가 나섭니다.
“애들아 모여봐! 우리 할머니 모셔다 드리자.”
“어떻게??”
“가만있자,저기 창고에 가면 우리가 작업할 때 쓰던 당까(들것)가 있잖아 거기에 태워서 가면 되잖아~~~~~“
다른 아이가 나섭니다.
“선생님 오시면 어쩌고?”
"선생님 오시기 전에 얼른 갔다오면 되잖아.."
아이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망설이더니
"그래 얼른 갔다오자."
모두 찬성입니다.
부모님을 도와 농사일로 다져진 몸들이라 힘을 쓰는 데는 자신이 있습니다.
한 아이가 창고로 달려가 가마니에 막대를 양쪽으로 뀌어 만든 들것을 가지고 옵니다.
“할머니 여기 타셔유.“
“아이구 고맙기도 하지... 고마워,고마워.....”
할머니는 양손으로 들것의 양쪽을 잡고 구부정하니 들것에 앉아계십니다.
넷이 한 조가 되어 들것에 탄 할머니를 모시기 시작합니다.
그 뒤로 한 열댓명의 아이들이 우르르 뒤를 따릅니다.
한 조가 지치면 다른 한 조가 교대하고 이렇게 산길로 산길로 걸음을 재촉합니다.
언제 선생님이 학교에 나타나실 지 모르는 조마조마함도 잊은 채......
얼마 쯤 왔을 때부터인가,아이들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히고 얼굴이 불그레하니 힘이 많이 드는 모양입니다.
맨몸으로 걷기만 하여도 버거운 산길을 들것에다 할머니를 태우고 가려니 생각같이 쉽지가 않습니다.
처음에는 신이 나서 재잘재잘 떠들며 따라오던 친구들 이었지만 몇 번 교대를 하며 들것을 들더니만 지쳐가는 지 말들이 없습니다.
덩치 큰 한 아이가 나섭니다.
“야 힘내자. 얼마 안남았어....
지금 그만 둘 수도 없잖어?????”
다른 한아이도 맞장구를 칩니다.
“저기 서낭당 둥구나무 보이지 거기만 넘으면 바로 동네야”
다시 힘을 내어 들것을 옮김니다
이렇게 두 시간 좀 넘어 마을 어귀에 닿았습니다.
“할머니댁이 어디여유“
“응 저기 저 밑으로 쭉 내려가다 왼쪽에 싸립문 보이지?”
“야 이제 다왔다.”
아이들의 들것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갑니다.
싸립문을 열고 들어가니 며느리인 듯한 아줌마가 방에서 문을열고 나옵니다.
“더 있다 오지 벌써 왔어유?”
퉁면스럽게 한 마디 하더니 "탁" 방문을 열고 들어 갑니다.
할머니를 들것에서 부축해 마루 위에 모셨습니다.
“고마워 고마워~~~~”
할머니의 주름잡힌 눈가로 그렁그렁 눈물이 고입니다.
“할머니 안녕히 계세유!!!”
꾸벅 인사를 하고 싸립문을 나섭니다.
그제서야 정신이 번쩍 난 아이들은 “야 우리 빨리 학교로 가자, 선생님 오셨을 꺼여...“
아이들은 오던 길을 버리고 길게 학교쪽으로 뼏어 있는 산능선을 따라 노루달리듯 산을 내달립니다.
나뭇꾼들이 오르내리는 좁다란 길을~~~
머릿 속에 두 사람의 얼굴이 교차합니다.
화난 선생님의 얼굴~ 그리고 눈에 눈물이 고인 할머니의 모습~~~~
산등성이를 몇 개를 넘고 넘어 교실로 우르르 몰려 들어서니 선생님의 화난 얼굴이 교단에서 우리를 노려보고 계십니다.
일렬로 죽 늘어선 아이들은 얼굴이 사색입니다.
자리에 앉아있는 여자애들의 표정도 잔뜩 겁에 질려 있습니다.
“이놈들! 누가 선생님 허락도 없이 거길 갔다오라고 했어!!.
너희들 시험이 언젠 지 알기나 알어??“
“전부 업드려 뻣쳐!!”
선생님의 화난 눈꼬리가 자꾸 위로 올라갑니다.
선생님은 손목에서 시계를 풀어 "탁" 교탁에 내려 놓고
“어디 맛좀 봐라.”교편을 잡은 손에 '퉤퉤'침을 뱉으시더니
‘탁탁탁,탁탁탁.......’
연신 선생님의 교편이 허공에서 아이들의 엉덩이로 사선을 그으며 떨어집니다.
아이들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합니다.
여자애들의 놀란 눈에도 눈물이 고였습니다.
세월은 덧없이 흘러 악동들은 학교를 졸업하고 저마다 삶의 터전을 찾아 뿔뿔이 흩어졌읍니다.
세월은 가고 눈가에 잔주름이 잡히고 귀밑머리가 하나 둘 힌머리로 수를 놓을 때 한사람 한사람 수소문을 하여 한 데 모였습니다.
동창회를 하였습니다.
시골학교도 많이 변하였습니다.
옛날의 기와 지붕에 나무기둥, 바닥은 나무마루, 외벽에는 송판을 층층이 덧대어 바람막이를 한 기다란 일층집 이었는 데 그 교사는 학교옆을 지나는 경부고속도로 공사로 헐리고 우측 산 밑으로 2층 현대식 건물을 지어 이사를 하였다.
차가 지날 때마다 뭉게구름처럼 먼지를 일으키던 신작로는 왕복4차선의 포장도로로 변하였습다.
은사님도 모셔 왔습니다.
선생님의 모습도 많이 변하셨습니다.
머리는 백발성성하시고 허리는 구부정하니 칠순을 앞에 둔 노신사가 되셨습니다.
그 동안의 살아온 이야기하며 오지 못한 친구들의 안부하며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은사님께서도 각자의 사는 곳이며 무얼하는 지 세세히 물으십니다.
한 친구가 은사님을 향하여
"선생님 옛날 '육학년 가을 일' 기억하십니까?
우리 악동들이 할머니를 산넘어 등골에 모셔다 드리고 선생님께 엉덩이를 맞던 일 말입니다."
"응... 그래 기억나지..."
"선생님, 그 때 왜그렇게 세게 저희들 엉덩이를 때리셨어요?"
은사님은 빙그레 웃으시기만 할 뿐 말이 없으십니다.
악동들은 진작에 깨달았습니다.
그 매가 사랑의 매라는 것을......
그 매에는 벌보다 칭찬찬이 더 많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동창회 다음날 대둔산 정상에서~~~~~

용자네 결혼식장에서

정화네 결혼식장에서

어느 동창회

동해안 여행에서~~
ps: 빛바랜 추억을 되살려봅니다.
추억은 그립고 아름답고 아련한 우리들의 소중한 자산입니다.
앞으로도 많은 이야기 추억으로 남기면서 소통하면서 삽시다.
-뱜바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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